요즘 또 한바탕 밸리가 시끌시끌하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2002년도 즈음에 코스계에서 유명했던 사건인데, 나야 코스계에 들어온 것은 06년도 말이라 그 당시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06년 11월 첫 팀코스 때 사건의 가해자라고 이야기되는 모 님과 알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한 번 더 팀코를 함께 하게 되면서 블로그 이웃이나 MSN도 등록하게 되고 친하다까진 아니어도 나름 안면은 트고 지내게 되었다. 나 자신은 '사고 구조가 약간 독특하신 듯하다, 나는 조금 따라가기 힘들지도?' 정도의 감상밖에 없었는데, 어느날 아는 오빠에게서 뭔가 성적인 문제로 트러블이 있었던 사람이니 너무 가까이 지내지는 말라는 충고를 받았었다. 전혀 몰랐던 사건이고, 어차피 친해질 만큼의 접점도 없어 보여서 그러려니 했고, 그 분의 블로그에 해명글이 올라왔을 때도 '헤에-'라는 느낌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나는 다른 코스팀에 속하게 되었고, 자연히 접점도 사라져 같이 코스하는 일도 없고 블로그 이웃도 어느샌가 끊어졌다.
그렇게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그저께
사건 정리글이 이오공감에 떴고, 조금이나마 안면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 흥미를 가지고 읽어 보았다. 이리저리 링크를 타다보니 올라왔던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읽고 넘겼던 그 분의 해명글, 또
그 해명글에 대한 반박글,
피해자인 여자분이 코믹월드 게시판에 올리셨다는 글도 거의 다 보게 되었다.
여러가지 정황이라든가, 글의 논리성 등을 보아 나도 그 분이 가해자가 아닐까 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은 판단 보류인 상태고,
이 글에서 그 사건이 어떻다는 둥, 가해자가 어떻고 피해자가 어떻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는데, 실상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그 사건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그애의 발언 때문이다.
내가 "이러저러하니 그 사람이 가해자일 확률이 크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 왜 피해자가 가만히 있느냐, 피해자가 별 말 안하는 이상 그건 합의하에 했을 확률도 크다"라는 말을 했다.
갑자기 일주일 전쯤 이오공감에 올랐던,
고속터미널에서 추행당하고 니킥 날리려다 실패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전에도 간혹 이오공감에 오르곤 했던, 성추행 관련 이야기들도 생각나고.
그런 글들이 이오공감에 오를 때마다 머릿 속으론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래도 관련글은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불쾌한 생각을 깊이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번에는 왠지 그냥 모른척 넘어가고 싶지 않더라.
'떳떳하다면 왜 말을 못하느냐'라는 태도가 서운해서인지도.
혹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다.
어떤 남자가 소녀를 강간했다. 소녀와 부모님은 신고를 했고 그 남자는 체포되어 5년형을 언도받았다.
5년 후, 남자가 출소해서 소녀를 찾아왔고, 다시 성폭행을 했다.
남자는 체포되어 가면서, 소녀에게 "5년 후에 또 보자"라는 말을 남긴다.
이 이야기는 링크를 타고 돌다가 언뜻 읽은 것이라, 출처가 어딘지, 실제 일어난 일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혹시 아시는 분은 제보 부탁드린다. 지적받거나 하면 바로 삭제하겠다)
무서운 건, 지어낸 얘기인지 실화인지 몰라도, 너무나 현실성이 넘친다는 점이다.
내 얘기를 해 볼까.
나는 그런 문제에 관해서는 다른 여성분들에 비해 아주 평탄하게 살아온 편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딱 한 번 아담을 만난 적이 있었다.
물론 아담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고, 그들을 소재로 한 우스갯소리도 제법 들었었고, '혹시나 만나게 되면 비웃어 줘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맞닥뜨렸을 때- 처음 골목에서 마주쳤을 때는 가까스로 관심없는 척 지나가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큰길로 나와 그 다음 골목 앞을 지나갈 때 이상한 낌새에 고개를 돌리자, 그 아담이 옆골목으로 쫓아와서 또 그짓을 하고 있는 거였다.
그때, '저놈이 날 쫓아와서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확 꿰뚫고 지나갔고, 난 그 다음순간 미친듯이 달려 도망쳤다.
고작 시각적인 행동에도 이렇게 무서운데, 하물며 추행이나 폭행은 어떨까.
부모님, 오빠나 남동생, 혹은 남자친구가 있다 해도, 24시간 옆에 붙어있을 수는 없다.
일 저지르려는 놈이 나쁜 맘 먹으면 그걸로 게임 끝이다.
적어도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아주 소수의 예외는 있겠지만) 명백하게 여자가 불리한 거다.
심지어 그렇게 불행한 일을 당하면 사람들이 감싸주기는커녕, 아주 좋은 화젯거리로 삼는다.
일부 정신나간 사람들은 행동이 헤퍼서 그렇다는둥, 걸레라는 둥,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해대기도 한다.
그나마 가족이라도 감싸주면 다행이겠지만, 아마 여성분들 중 추행 비슷한 일 당했다가 어머님께 동네에 창피하다고 야단 맞으신 분들 많을 거다.
그런 거 다 감수하고 신고했다 치자. 처벌이 심하기를 한가? 징역 좀 살고 땡이다. 신고했다고 앙심 품고 찾아오면 어떡할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당당하게 내가 피해자입니다라고 밝힐 수 있겠는가?
피해자는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억울하고 분해도 결국 자기 손해라고 입 다물고 잠적하게 되고, 가해자는 떳떳이 얼굴 들고 다닌다.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내가 하고픈 말은
피해자가 가만히 있다고 해서 켕기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는 거다.
안 그래도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은 피해자에게,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짓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설령 그 말에 아무런 악의가 없었다고 해도 말이다.